제사해 운동: 저 새는 해로운 새다
1958년, 국가의 명령으로 수억 마리의 참새가 학살당했다. 인류가 자연의 톱니바퀴를 인위적으로 빼냈을 때 벌어진 기이하고도 섬뜩한 나비효과. 생태계를 통제하려 했던 인간의 거대한 실험을 파헤친다.
글쓴이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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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참새 박멸을 위한 제사해 운동 사진
기이한 소음의 도시
1958년 4월, 베이징의 하늘은 기괴한 소음으로 가득 찼다. 징, 냄비, 양동이, 북. 도시의 수백만 인구가 일제히 거리로 나와 손에 잡히는 모든 금속을 두드렸다. 총성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을 날던 작은 새들은 땅에 내려앉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소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결국 심장이 터질 듯한 스트레스와 탈진을 견디지 못한 새들이 하나둘 아스팔트 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기계적이고도 완벽한 학살이었다. 거리에 쌓인 참새의 사체는 산을 이뤘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한 국가가 자연을 상대로 선포한, 거대한 위생 방역의 한 장면이었다.
4대 해악을 멸하라
1950년대 후반, 중국은 대약진 운동이라는 전례 없는 경제 부흥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농업과 공업을 동시에 발전시켜 단기간에 서구 열강을 따라잡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지도부의 눈에 들어온 수치가 있었다. 바로 해충과 야생동물로 인해 손실되는 곡물의 양이었다.
1958년, 정부는 제사해운동을 공식 발표한다. 인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식량을 축내는 네 가지 해악을 멸절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명단에 오른 타깃은 명확했다. 쥐, 파리, 모기. 여기까지는 현대의 공중보건학적 관점에서도 납득할 수 있는 위생 캠페인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네 번째 타깃이 문제였다. 목록의 마지막 줄에는 참새가 적혀 있었다.
자연이라는 방정식에서, 인간이 오만하게 변수 하나를 삭제한 순간이었다.
해로운 새와 침묵하는 과학
왜 참새였을까.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다. 농촌의 낟알을 축내는 참새를 향해 마오쩌둥이 '인민의 식량을 훔치는 해로운 새'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 그 거대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당시 정부의 계산에 따르면, 참새 한 마리가 1년에 소비하는 곡물은 약 2.4kg에서 4kg에 달했다. 참새 백만 마리를 잡으면 6만 명의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산수가 도출되었다. 이 수치는 대중을 움직이는 강력한 명분이 되었다. 참새는 곧 인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균열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생물학과 조류학계의 주류 의견은 달랐다. 저명한 조류학자 정쭤신을 비롯한 일부 과학자들은 위장 해부 데이터를 근거로 반론을 제기했다. 참새가 수확기에 일부 곡물을 먹는 것은 사실이나, 번식기인 봄과 여름에는 주로 메뚜기를 비롯한 곤충을 잡아먹는다는 팩트였다. 즉, 참새는 곡물을 탐하는 도둑이 아니라, 해충의 개체 수를 억제하는 생태계의 필수적인 방어 기제였다.
그러나 이 과학적 사실은 정치적 슬로건의 거대한 파도 앞에 힘을 잃었다. 반대 의견을 내는 학자들은 보수주의자 혹은 혁명의 방해꾼으로 낙인찍혔다. 과학이 이념에 굴복한 자리에는 맹목적인 집행만 남았다. 참새의 둥지는 헐렸고, 알은 깨졌으며, 새끼들은 땅에 버려졌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단 1년 만에 약 20억 마리의 참새가 자취를 감췄다. 하늘은 고요해졌다. 인간의 승리인 듯했다.
삭제된 변수, 붕괴하는 시계탑
1959년 봄. 농민들은 풍년을 기대하며 들판으로 나섰다. 낟알을 훔쳐 가는 새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풍성한 수확이 아니라,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불길한 구름이었다. 구름의 정체는 수억 마리의 메뚜기 떼였다.
먹이사슬의 천적이 사라지자, 해충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기 시작했다. 메뚜기를 비롯한 곤충들은 참새가 먹던 곡물의 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농작물을 먹어 치웠다. 잎사귀 하나, 줄기 하나 남지 않았다. 방어선이 무너진 들판은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했다. 살충제를 들이부어도 곤충의 번식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자연의 포식자 역할을 인간이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생태학적 재앙은 당시 추진되던 무리한 농업 정책, 그리고 기상 악화와 맞물리며 파국을 향해 치달았다.
물론 참새 학살 자체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기근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대기근은 정책적 실패와 과장된 통계, 혹독한 자연재해가 겹쳐 만들어진 복합적인 재난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오판으로 초래된 극단적인 생태계 교란은, 이미 흔들리던 식량 공급망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며 비극을 가속하는 뼈아픈 촉매제로 작용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중국 정부는 1960년, 과학계의 거듭된 건의를 조용히 수용한다. 참새를 박멸 대상에서 제외하고, 그 자리에 빈대를 채워 넣었다. 요란하게 시작되었던 학살의 시대는 그렇게 공식적인 철회 선언도 없이 슬며시 막을 내렸다.
우리는 무엇을 삭제하려 하는가
제사해운동은 단지 반세기도 더 지난 과거의 기이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것은 시스템에 대한 무지가 의도적 개입과 만났을 때 생태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하고도 건조한 실험 데이터다.
현대의 우리는 어떠한가. 유전자 가위 기술로 특정 모기의 번식을 원천 차단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성층권에 미립자를 뿌려 태양 빛을 반사하려는 지구 공학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생태계라는 복잡한 알고리즘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참새를 찾아 우리만의 통제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인과율에 따라 건조하게 반응할 뿐이다. 우리가 빼버리려는 다음 톱니바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어떤 파동을 감당하게 될 것인가.
자연은 용서하지 않는다. 인간이 오답을 낼 때마다, 조용히 청구서를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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