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씽: 소련이 미국에 건넨 속이 빈 나무 조각
1945년 소련 소년단이 미국 대사에게 선물한 나무 장식. 그 안에는 배터리도 전선도 없는 미지의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 7년 동안 미국의 최고위 기밀을 모두 듣고 있던 더 씽의 실체를 해부한다.
글쓴이 Harry
읽기 3 분
발행일

1960년 소련의 국장 도청 장치를 폭로하는 미국 대사
순진한 트로이 목마
1945년 8월 4일.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던 모스크바. 미국 대사 에이버럴 해리먼은 특별한 손님들을 맞이했다. 소련 소년단인 피오네르 단원들이 스파소 하우스라 불리는 미국 대사관저를 방문해 양국 간의 우정과 동맹을 기념하며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 장식품을 선물한 것이다. 미국의 상징인 흰머리수리가 새겨진 이 거대한 나무 국장은 무척 아름다웠다. 대사는 아이들의 순수한 호의에 감동했고 철저한 보안 검사를 거친 뒤 이 장식을 자신의 서재 벽 책상 바로 뒤에 걸었다.
대사의 서재는 국가의 최고 기밀이 논의되는 밀실이었다. 해리먼은 우정의 상징을 곁에 두었다고 굳게 믿었지만 그는 트로이 목마를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공간에 직접 들여놓은 셈이었다. 소련의 첩보기관 KGB는 그가 장식을 벽에 거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가능한 기술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미국 대사관의 내밀한 정보들이 끊임없이 소련으로 새어나갔다. 대사관은 발칵 뒤집혔고 정기적으로 철저한 도청 장치 탐지 작업이 이루어졌다. 요원들은 벽을 긁어내고 바닥을 조사했으며 모든 전자 기기를 해체했지만 그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의 도청 장치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전력을 공급할 배터리와 수집한 음성을 밖으로 내보낼 송신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배터리는 수명이 짧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했고 송신기는 일정한 전파를 발생시켜 탐지기에 쉽게 발각되었다. 하지만 스파소 하우스의 서재는 완벽히 침묵했다. 전파도 흐르지 않았고 배터리의 흔적도 없었기에 물리 법칙에 따르면 그 방에는 어떠한 전자적 감시 장치도 존재할 수 없었다.
이 불가능한 기적을 만들어낸 인물은 세계 최초의 전자 악기 테레민을 발명한 천재 물리학자 레프 테레민이다. 소련 수용소에 수감되어 비밀 연구실에서 일하던 그는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기계를 설계해 냈다. 전력이 필요 없는 도청 장치였다.
수동 공명기
장치의 원리는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이었다. 배터리나 전선은 일절 없었고 장치 내부는 얇은 금속 막이 덮인 빈 공간과 작은 안테나가 전부였다. 스스로는 아무런 작동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벽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관저 밖에 주차된 소련의 밴에서 특정 주파수의 마이크로파를 서재 쪽으로 쏘는 순간 장치는 비로소 깨어났다.
대사가 서재에서 말을 하면 음파가 장치 내부의 얇은 금속 막을 미세하게 진동시켰다. 밖에서 쏘아 보낸 마이크로파는 이 진동과 부딪혀 변조된 후 다시 밖으로 튕겨 나갔다. 소련 요원들은 반사된 전파를 수신해 음성으로 해독했다. 외부에서 전파를 쏘지 않을 때는 그저 죽은 금속 조각에 불과해 전파 탐지기에 걸릴 리가 없었다. 전력이 필요 없으니 수명은 무한했다.
침묵이 깨지다
완벽했던 7년의 감시는 우연한 계기로 끝이 났다. 1952년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관의 무선 통신원이 소련 공군의 통신을 감청하던 중 헤드폰 너머로 기이한 소리를 포착했다. 러시아어가 아닌 명백한 미국식 영어였고 그것은 바로 옆 스파소 하우스에 머물던 조지 캐넌 미국 대사의 목소리였다. 길었던 침묵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미국 보안 요원들이 즉시 스파소 하우스를 급습했다. 서재를 샅샅이 뒤졌다. 벽면을 스캔하던 중 마침내 나무 조각 근처에서 기이한 신호가 포착되었다. 요원들은 흰머리수리 조각을 벽에서 뜯어내 쪼갰다. 그 안에는 연필 모양의 텅 빈 금속 실린더 하나만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 전선도 배터리도 없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조차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서재에서 나누었던 수천 번의 1급 비밀 대화와 대통령에게 보내는 보고가 7년 동안 이 텅 빈 금속 조각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더 씽
미국은 이 미지의 장치에 더 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거대한 기술적 굴욕이었다. 영국과 미국의 최고 과학자들이 이 장치를 역공학으로 분석하는 데만 수년이 걸렸다. 더 씽은 현대 감시 기술의 0세대로 불린다. 수동적 주파수 식별 기술, 즉 우리가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무선 태그 기술이 이미 1945년에 완성되어 미국의 심장부에 심어져 있던 것이다. 1960년 정찰기 격추 사건으로 소련이 미국의 스파이 행위를 맹비난하자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나무 조각을 대중에 공개하며 스파이 행위는 어느 한쪽만의 것이 아니라는 씁쓸한 항변을 남겼다.
가장 완벽한 스파이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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