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 의사: 까마귀 가면을 쓴 의사들
죽음을 몰고 다닌다는 기괴한 괴담 뒤에 가려진 역병 의사의 실체. 맹신적 의학 속에서 생존을 갈구했던 17세기 방호복의 기원과 전염병의 억울한 희생양이 된 그들의 진짜 기록을 추적한다.
글쓴이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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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묘사된 역병 의사의 모습
텅 빈 거리의 발소리
안개가 짙게 깔린 17세기 유럽의 어느 골목. 거리에 남은 것은 부패하는 냄새와 짙은 적막뿐이다. 그때 텅 빈 돌길 위로 나무 지팡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진다. 챙이 넓은 검은 모자와 발목까지 덮는 두꺼운 가죽 코트. 그리고 기괴하게 튀어나온 새의 부리. 역병 의사의 등장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창틈으로 그 실루엣을 숨죽여 지켜본다. 저 까마귀가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시체가 쌓인다. 어느새 대중의 머릿속에 역병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구원자가 아니라 죽음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신으로 각인되었다.
공포의 아이콘이 된 방호복
현대인에게 이들의 모습은 핼러윈 코스튬이나 오컬트적인 상징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1619년 프랑스의 의사 샤를 드 로름이 고안한 이 복장은 철저히 당대 의학의 정수가 집약된 최첨단 장비였다. 샤를 드 로름은 루이 13세를 비롯한 프랑스 왕실을 전담하던 당대 최고의 엘리트 의사였다. 그가 설계한 복장은 주술적 목적이 아니라 철저한 과학적 가설에 기반하고 있었다.
당시 의학계는 전염병이 독성을 품은 나쁜 공기 즉 미아즈마를 통해 피부와 호흡기로 스며든다고 믿었다. 전신을 덮은 모로코산 가죽 코트에는 밀랍과 짐승의 기름을 두껍게 발랐다. 오염된 공기가 피부에 닿지 않게 막고 환자의 피나 체액이 옷감에 스며드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눈에는 두꺼운 유리알을 덮어 점막을 보호했다.
가장 기괴한 인상을 주는 15센티미터 길이의 긴 부리는 시각적 위협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17세기가 만들어낸 최초의 방독면이었다.
오해와 실체의 경계
기록은 명확하다. 복장은 생존을 위한 극도의 방어 기제였다. 하지만 균열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발생했다. 까마귀 가면이 나타난 직후 거리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는 광경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인과관계를 뒤집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역병 의사가 마을에 저주를 내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과연 그들은 죽음을 전파하는 흑마술사였을까.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역에 남겨진 문서와 행정 기록들은 이 잔혹한 도시 괴담의 이면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가면 뒤에 감춰진 세 가지 실체
테리아카와 생존을 위한 처절한 기능주의
부리 속에 채워진 내용물은 당대 의학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의 집합체였다. 역병 의사들은 부리 끝에 두 개의 작은 숨구멍을 뚫고 그 안을 장미와 민트 캄파 클로브 같은 강렬한 향료로 가득 채웠다. 특히 테리아카라는 60여 가지의 약재와 꿀 뱀의 살코기 등을 섞은 만병통치약을 부리 내부에 꼼꼼히 발랐다.
당시 흑사병이 휩쓸고 간 도시의 악취는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질병의 원인이 부패한 냄새에 있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짙은 향기로 오염된 공기를 중화시켜야만 했다. 기괴하게 길어진 부리의 형태는 이 많은 약초를 눌러 담고도 최소한의 호흡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처절한 기능주의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괴물로 보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질식하지 않고 숨을 쉬고 싶었을 뿐이다.
고용 계약서가 증언하는 하급 노동자의 비애
전염병이 창궐하자 유능하고 부유한 의사들은 이미 귀족들과 함께 도시를 버리고 도망쳤다. 통제력을 잃은 도시에 남아 감염자들을 감당해야 했던 것은 행정 당국이었다. 이탈리아 파비아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문서 보관소에는 당시 역병 의사들과 맺은 고용 계약서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이 문서들은 놀라운 진실을 폭로한다. 역병 의사의 대다수는 정식 의학 교육을 받지 못한 자원자이거나 빈민 출신의 하급 노동자 때로는 빚에 쫓기는 이류 의사들이었다. 시 당국은 이들에게 높은 급여와 무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철저한 사회적 격리를 강요했다. 그들은 일반 시민과 대화할 수 없었고 지정된 구역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이들은 완치를 목적에 둔 치료자가 아니었다. 환자의 수를 장부에 적고 격리 구역을 설정하며 쏟아지는 시체를 치우는 험악한 행정 업무가 그들의 진짜 역할이었다. 이들은 권력의 비호를 받는 사신이 아니라 가장 비참한 곳에 투입된 소모품에 불과했다. 실제로 수많은 역병 의사들이 마스크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하얀 지팡이에 묻은 무력함
역병 의사들의 손에 들려 있던 붉은색이나 흰색의 긴 나무 지팡이 역시 오해의 산물이다. 대중은 이 지팡이가 병자들을 때리거나 저주를 내리는 용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17세기 방식의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 도구였다.
감염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의사들은 환자의 몸에 손을 대는 대신 지팡이를 이용해 옷을 들추고 흑사병의 징후인 림프절 부종을 확인했다. 거리에 쓰러진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시체 운반꾼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도 지팡이를 썼다.
때로는 사혈 요법을 지시하거나 부종 위에 거머리를 올리는 등 당대의 무의미한 처방을 내릴 때 사용되는 지시봉이기도 했다. 거리에 쓰러진 감염자들이 살려달라며 매달릴 때 물리적인 접근을 막아내는 방어 무기로도 쓰였다. 지팡이는 흑마술의 도구가 아니라 무지한 의학 지식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나약한 인간의 바리케이드였다.
생존을 향한 가장 이성적인 도구가 대중의 눈에는 가장 비이성적인 공포로 비쳤다.
누가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는가
역병 의사는 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시각적 잔상을 남겼다. 우리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을 죽음을 흩뿌리는 불길한 상징이자 미스터리한 음모의 주체로 소비해 왔다. 하지만 파편화된 행정 기록과 당시의 의학 서적들은 그들이 철저한 무지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제 몫의 임무를 다하려 했던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질병을 만들지 않았다. 도망칠 곳 없는 닫힌 도시에서 죽음을 세고 처리하는 가장 끔찍한 노동을 묵묵히 수행했을 뿐이다. 까마귀 가면은 타인을 위협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던 얇고 위태로운 껍데기였다.
그러나 대중은 여전히 그들을 전염병의 원흉이자 괴물로 기억한다. 보이지 않는 전염병의 공포를 감당하기 위해 사람들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물리적인 형태의 공포 즉 분노를 쏟아낼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질병의 시대를 장악했던 것은 정말 무자비한 박테리아였을까. 아니면 미지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괴물을 창조해낸 인간의 군중 심리였을까.
그들은 죽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흔적을 쫓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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