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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DNA: DNA의 98%는 쓰레기다

인간 유전체의 98%는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이른바 쓰레기 DNA로 이루어져 있다. 진화가 남긴 무의미한 흔적인가, 아니면 인류가 아직 해독하지 못한 심연의 암호인가. 생명의 근원을 둘러싼 가장 건조하고 기이한 논쟁을 들여다본다.

글쓴이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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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작은 입자들로 구성된 DNA 이중 나선

작은 입자들로 구성된 DNA 이중 나선. Photo by Nicola Narracci

펼쳐진 책, 지워진 글자들

당신 앞에 100페이지 분량의 아주 정교한 매뉴얼이 놓여 있다. 이 매뉴얼은 당신의 생사를 결정지을 절대적인 지침서다. 하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기묘한 위화감이 든다.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문장은 단 2페이지뿐이다. 나머지 98페이지는 무작위로 배열된 알파벳, 끝없이 반복되는 단어, 그리고 해독 불가능한 기호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당신이라면 이 책의 98페이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찢어버리거나 무시할 것이다.

이 기묘한 책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바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DNA에 대한 이야기다. 자연은 극도로 효율적이다. 생존에 불필요한 것은 가차 없이 도태시킨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며 이 거대한 무의미의 나열을 묵묵히 복제해 낸다. 의미 없는 텍스트를 유지하기 위해 생명이라는 시스템이 스스로 과부하를 견디고 있는 셈이다. 아주 조용하고 기계적으로 말이다.

생명의 암흑 물질

2003년 완료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야심 찬 과학적 시도였다. 과학자들은 생명의 설계도를 완전히 해독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간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최소 10만 개 이상의 유전자가 존재할 것이라 예상했다. 결과는 달랐다. 인간의 유전자는 약 2만 개에 불과했다. 선충이나 초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숫자였다.

더욱 기이한 사실은 유전체의 비율이었다. 전체 DNA 염기서열 중 단백질을 생성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는 고작 1.5%에서 2%에 불과했다. 나머지 98%는 아무런 단백질도 암호화하지 않는 비부호화 DNA였다. 학계는 이 거대한 침묵의 영역에 '정크 DNA'라는 직관적이고도 오만한 이름을 붙였다. 글자 그대로 유전체 내에 쌓여 있는 생물학적 쓰레기라는 뜻이다.

신은 생명의 설계도에 끝없는 낙서를 남겼다.

이기적인 유전자와 진화의 흉터

정크 DNA라는 용어는 1972년 유전학자 오노 스스무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이 98%의 잉여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진화는 완벽한 설계자의 작품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생존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주창한 이기적 유전자론은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이론적 배경이 된다.

과학자들은 정크 DNA의 상당 부분이 스스로를 복제해 유전체 곳곳에 끼워 넣는 트랜스포존 같은 이기적 유전 인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혀냈다. 이들은 숙주인 인간의 생존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DNA를 퍼뜨리는 데만 몰두한다. 또한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을 감염시켰던 고대 바이러스의 파편인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 역시 유전체 내에 화석처럼 굳어져 있다.

이 관점에서 유전체는 정교한 기계장치가 아니다. 고장 난 유전자, 바이러스의 잔해, 맹목적인 복제 인자들이 아무렇게나 퇴적된 거대한 생물학적 쓰레기장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이 쓰레기들을 완벽하게 솎아내는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것보다, 단순히 짊어지고 살아가는 편이 에너지 측면에서 더 나았을 뿐이다. 정크 DNA는 생명체가 겪어온 가혹한 진화의 흉터 그 자체다.

98%의 통제실, 숨겨진 스위치

2012년 과학계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한다. 미국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가 주도한 다국적 연구 프로젝트인 ENCODE의 결과가 발표되면서부터다. 전 세계 수백 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정크 DNA가 결코 쓰레기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 유전체의 약 80%가 최소한 하나 이상의 생화학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비부호화 DNA는 단백질을 만들지 않을 뿐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유전자의 발현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수백만 개의 스위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의 단백질을 만들어낼지 결정하는 통제실이 바로 정크 DNA 영역에 존재했던 것이다. 또한 이 영역에서는 단백질 번역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세포 내 복잡한 네트워크를 조율하는 다양한 비부호화 RNA가 쉼 없이 생성되고 있었다.

초파리와 인간의 유전자 수는 비슷하지만 그 복잡성은 비교할 수 없다. ENCODE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은 그 차이가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를 켜고 끄는 조절 네트워크의 복잡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2%의 유전자가 벽돌이라면 98%의 정크 DNA는 벽돌을 어디에 어떻게 쌓을지 지시하는 정교한 청사진이자 운영 체제다. 쓰레기로 치부되었던 영역이 사실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생물학적 암흑 물질이었던 셈이다.

암호인가, 공백인가

물론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댄 그라우어를 비롯한 여러 진화생물학자들은 ENCODE 프로젝트가 기능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관대하게 해석했다고 맹렬히 비판한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적 역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전체의 98%가 단순한 잉여물이 아닐 가능성이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과학계는 요동치고 있다.

당신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30억 쌍의 염기서열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 절대다수는 여전히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이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쌓여버린 무의미한 오류 코드일까. 아니면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아직 읽어낼 수조차 없는 고도로 압축된 심연의 언어일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우리 몸의 98%를 구성하는 이 지독한 공백의 정체를 아직 아무도 완벽히 모른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아직 쓰레기와 암호를 구분할 지식을 갖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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