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제약 자본의 딜레마: 완치를 향한 환상
인류의 기대수명은 늘어났지만 역설적으로 평생 약을 복용하는 인구는 폭증하고 있다. 질병의 완치와 자본의 수익 사이, 현대 의학이 마주한 구조적 모순과 조용한 의혹들을 객관적 시선으로 파헤친다.
글쓴이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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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 위의 약품 앰플과 주사기. Photo by Lucas Guimarães Bueno
자본이 던진 차가운 질문
2018년 4월, 월스트리트의 한 거대 투자은행에서 발행된 바이오테크 산업 분석 보고서가 금융계를 넘어 의학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보고서는 신약 개발의 윤리적 가치나 인류애를 논하지 않았다. 애널리스트가 거액을 움직이는 기관 투자자들에게 던진 질문의 제목은 단 하나였다.
"환자를 완치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인가."
이 문장에는 어떠한 감정도 섞여 있지 않다. 바이오 산업 역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회수되어야 하는 거대한 시장의 일부일 뿐이다. 투자은행의 철저한 재무적 리스크 분석 결과물은, 현대 의학이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가장 어두운 딜레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생명을 구하는 궁극의 기술이 기업의 장기적인 존립을 위협한다면, 자본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연장된 수명, 축적되는 데이터
글로벌 거대 제약회사들은 매년 천문학적인 자본을 연구개발에 쏟아붓는다. 하나의 신약이 기초 연구를 거쳐 3상 임상시험을 통과하고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조 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모된다. 이러한 막대한 자본과 첨단 과학의 결합 덕분에 한때 치명적이었던 감염성 질환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인류의 평균 기대수명은 비약적으로 연장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익숙한 서사다. 거대 제약 산업은 질병과의 전쟁에서 최전선에 서 있는 굳건한 방패이며,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이 곧 인류의 생명 연장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선순환 구조로 묘사된다. 실패 확률이 90%가 넘는 신약 개발의 험난한 과정을 고려할 때, 그들이 누리는 막대한 수익은 정당한 보상처럼 보인다.
치료할수록 증식하는 병상
하지만 의료 데이터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기이한 모순이 발견된다. 의학 기술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만성 질환의 발병률은 꺾이기는커녕 치솟고 있다. 당뇨, 고혈압, 자가면역질환. 이 질병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당장 생명을 앗아가지는 않지만 결코 낫지도 않는다.
과거에는 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수치들이 어느 순간부터 질병의 범주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고혈압과 콜레스테롤의 정상 수치 기준은 시대가 흐를수록 점진적으로 낮아졌고, 기준이 한 단계 내려갈 때마다 수천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약물 복용 대상자로 편입되었다.
현대 의학의 패러다임은 원인을 제거하는 완치에서, 증상을 억제하고 수치를 조절하는 관리로 이동했다. 환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삼켜야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약을 끊는 순간 억눌렸던 증상은 다시 고개를 든다. 이것은 진단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결과일까, 아니면 막대한 매몰 비용을 지속적으로 회수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산업의 방향성일까.
질병이 완전히 사라지면 시장도 함께 소멸한다. 이것은 악의적인 음모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건조한 원리다.
사라진 시장을 향한 경고
2010년대 중반, 미국의 한 혁신적인 바이오 기업이 C형 간염을 90% 이상 완치할 수 있는 기적의 신약을 시장에 내놓았다. 단 몇 주간의 복용만으로 환자들은 오랜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의학 역사에 남을 만한 쾌거였다. 그러나 주식 시장의 반응은 냉혹했다. 약을 먹고 완치된 환자가 급증하자 이듬해부터 해당 약물의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더 이상 약을 살 환자가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투자은행의 보고서는 이 사례를 정확히 지목하며 완치율이 높은 치료제는 장기적인 현금 흐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고 분석했다. 거대 제약사 입장에서는 수조 원의 개발 비용을 회수하고 주주들에게 매 분기 성장하는 이익을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단 한 번의 투여로 병을 끝내는 약과, 증상을 통제하며 평생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 기업의 이사회 테이블 위에서 재무적으로 더 안전하고 매력적인 상품은 어느 쪽이겠는가.
스폰서가 된 피규제자
신약을 검증하고 승인하는 국가 규제 기관과 제약회사 간의 경계는 대중의 생각보다 훨씬 모호하다. 세계 의학의 표준을 주도하는 미국 식품의약국을 비롯한 각국의 주요 규제 기관들은 신약 심사에 필요한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제약회사가 지불하는 심사 수수료에 의존한다. 신약 허가 기간을 단축시켜 중증 환자들에게 빠르게 약을 공급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제도다.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이 생겼다. 규제를 가해야 할 기관이 피규제 대상의 자금력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하는 제약사는 사실상 규제 기관의 가장 큰 고객이 되었다. 신속 승인 제도를 통해 시장에 나온 신약들이 훗날 심각한 부작용으로 조용히 퇴출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더욱 시선을 끄는 것은 인력의 이동이다. 규제 기관의 고위 간부들이 임기를 마치면 거대 제약회사의 임원이나 로비스트로 자리를 옮기고, 산업계 인사가 다시 정부 기관의 요직을 차지하는 회전문 인사가 반복된다. 우리는 이 견고한 협력망을 공중 보건을 위한 효율적 시스템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상호 감시 기능을 상실한 합법적인 카르텔로 보아야 할까.
가려진 처방전과 연장된 독점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방향은 철저히 특허 독점 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부작용이 적은 천연 성분은 아무리 질병 치료에 탁월한 임상적 효과를 보이더라도 특허를 온전히 독점할 수 없다. 독점권이 없으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기에, 주류 의학계의 천문학적인 연구 자금은 결코 그곳으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 제약사들은 인공적으로 합성된 화학 물질 개발에 집중한다. 현행 특허 제도는 보통 20년의 독점권을 부여하지만, 임상시험 기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기간은 훨씬 짧다. 특허 만료가 다가오면 기업들은 알약을 캡슐로 바꾸거나, 하루 두 번 먹던 약을 한 번 먹도록 화학 구조를 미세하게 변형하는 방식으로 특허 기간을 지속적으로 연장한다. 이를 업계에서는 에버그리닝 전략이라 부른다.
기업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막대한 수익 모델을 방어해 내지만, 환자들은 값싼 복제약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값비싼 신약에 계속 의존하게 된다. 돈이 되지 않는 치료법은 아무리 효과적이라도 주류 의학의 시스템 밖으로 조용히 밀려난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의학적 증거들은 순수한 과학의 산물인가, 아니면 자본이 선택한 결과물인가.
알약 하나에 담긴 청구서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을 소수의 탐욕스러운 기업가들이 어두운 지하실에 모여 인류를 병들게 한다는 식의 1차원적인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거대 제약 산업은 여전히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을 경감시키는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도구다.
문제는 시스템 그 자체의 모순에 있다. 이윤의 극대화와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주식회사 본연의 절대 목표와, 인류의 완전한 건강이라는 공중 보건의 가치가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궤를 같이할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이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신약의 승인이 반드시 환자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가장 혁신적인 기술조차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타협을 강요받기 마련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쏟아지는 의학적 성취의 뉴스 앞에서, 스스로에게 건조하고도 서늘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현대 의학이 제시하는 이 매끄럽고 정교한 처방전은 우리의 질병을 끝내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질병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것일까.
이것은 치료의 시작인가, 생명을 담보로 한 평생 구독의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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